아주 뒤늦게 영화 광해를 보았다. 개봉한지가 오래인데 관람을 망설였던 것은 아주 대단한 이유에서는 아니다. 그저 이병헌의 헐리웃 출연작들이 모두 액션만 화려한 졸작이어서였다. 물론 내 시각에서는 말이다. 그랬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 이병헌이 출연한 한국영화는 장르에 상관없이 연기력도 좋고, 나름 의미도 있고, 중요한 것은 내가 다 관람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유를 바로 수정한다. 내가 바빠서 거의 막바지 막 내리기 전에 후다닥 보았다는 이유로! 허허.
이 영화의 제작배경도 어찌 보면 단순한 듯싶다. 광해군 8년, 승정원일기 보름치가 사라져 모연한 행적을 상상으로 멋지게 때려잡아 그럴싸하게 풀었다.
폐모살제. 계모를 폐하고 어린 동생을 죽인 폭군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을 올리며 연산군과 더불어 왕이 아닌 왕, 즉 군으로 강등된 인물 광해. 줏대외교. 강대국 명나라와 그쪽에 사상내림굿 받고 왕이고 백성이고 나몰라라 오로지 명렐루야를 외치던 사대부 대신들과 끝없이 대립하며 중립과 실리외교를 주창하던 인물 광해.
이 양극의 해석 속에서 이 영화는 줏대외교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것도 역사적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실제의 ‘광해’가 아닌 광대 ‘하선’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주워 와 때려 맞췄다. 거기에 재미의 묘가 있다. 이 주워 온 가짜가 점점 외모만이 아닌 위엄한 왕으로서 진짜가 되어가는 것이다. 아니 궁궐담 안 권력집단 속에서 태생적으로 살아 온 진짜보다 시장바닥을 뒹굴며 백성들의 삶을 뼛속까지 빠삭하게 이해하는 가짜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고 진짜보다 더 크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이미 많은 평론과 해석이 나와 있으니 이만 각설하고, 몇 백 년이 흘러도 진짜같지 않은 가짜들과 가짜같지 않은 진짜들이 얽이고 섞여 살아가고 또 그것들이 뒤집혀 바뀌고 하는 게 인간욕망의 역사란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세 사람만 모이면 다툼과 모략이 싹트는데 역사를 만드는 건 사람이 아니런가. 사람이란 하나만 보고 예상할 수 없고, 외모만 보고 예단할 수 없으며 말만 듣고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럼에도 여야정파를 막론하고 오로지 권력에 집착한 기득권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진짜보다, 국민들의 삶을 뼛속까지 느끼고 국민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진실의 가짜를 기대하는 것은 그래도 세상이 차츰차츰 변화된다는 희망에서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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