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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헤집기

배신에서 믿음으로 갈 때 귓속말로 해줘요! 드라마 [귓속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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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광이다. 유소년기에는 이소룡과 성룡류의 무술영화 위주로 기초를 닦았고, 청소년기에는 1+1 상영관에서 헐리우드 액션물과 사춘기 청소년들의 필수장르 한국 에로물을 집중 탐구했다. 십대후반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아졌고, 뭔가 나라가 모순되었다고 느껴졌으며, 이유없는 반항심이 아닌 이유있는 저항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화는 관심이 멀어졌고, 알듯모를듯한 본질을 찾겠다고 철학책을 뒤적였다. 하지만 난해한 단어의 행렬들은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어버려 개에~똥철학이 되고 말았다. "에라이~ 몰라! 십대가 세상을 알아서 뭐해!!" 하며 감성이나마 위안을 얻고자 시집을 읽었다. 그 덕에 스물 무렵 잠도 안자고 시만 써댄적도 있었다. 그렇게 바바리코트 휘날리는 감성 청년이 되었다.

이십대 초반, 마지막 군부정권 후반기에는 모신문 사회면을 크게-사실은 제목만 크게- 장식한 사건으로 숨어지내는 경험과 린치를 당하는 체험도 겪었다. 그 뒤 한동안 아니 몇년일 수도 있다. 사람을 무서워했고, 믿지를 못해 거처를 수시로 옮겨다녔다. 정신적 안정을 위해 영화관을 다시 찾게된 것도 그쯤이다. 그 첫 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였다. 용산에 있는 극장이었는데 관람객이라곤 나 딱 한명이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 동숭시네마텍도 자주 찾았다. 거기서 나를 전율케 한 영화를 처음 발견했다. 아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이다. 그냥 무료해서 막 고른 이란 영화였다. 크크. 알지도 못하는 이란 영화라니. 눈꿉만큼만 고려했어도 절대절대 선택할 영화가 아니었다. 그런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공식에 물든 내 머리통을 한방에 내리쳤다. 영화인지 다큐인지 실제인지 내가 알고 있는 영화의 공식과 상식을 단박에 깨뜨렸다. 그래서 파고든 게 소위 [컬트영화]였다. 그 다음은 마치 수업코스처럼 홍상수 감독의 매니아가 되었다. 물론 이제는 김기덕도 홍상수도 질리고 식상하다.  


영화는 지금도 습관처럼 혼자보기도 하고 같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안보던 드라마를 보게 됐다. 한국 영화가 일취월장하여 연출력과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드라마도 동반상승한 몫도 있다. 중독성 높은 미드를 바짝 따라갈 수준이라고 하면 어따 비교야, 하며 돌 맞을까? 크크. 바야흐로 영화든 드라마든 흥행추세는 현재의 시대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권력이 바뀌어도 국민들 삶에는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울분들을 그런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풀고 있는 건 아닐까. 각설하고 최근 방영하고 있는 [귓속말]이라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다. 


[귓속말]은 법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소신의 판사가 억울한 살인용의자의 누명을 벗기려다 주변 권력의 마수로 인해 대형로펌 대표 변호사의 정략사위가 되고 수시로 변하는 위기상황을 돌파해나가는 스토리인데, 허허 대범하게도 방산비리를 건드리는 스토리다. 그 판사, 아니 그 변호사의 상대역은 무술고수의 파직된 여형사다. 억울한 살인용의자의 딸이기도 하고 아빠를 위하려다 파직됐다. 근데 사실 이 여자 너무 싸움을 잘해 오버 쩐다는 느낌이 있다. 초반 몇가지 개연성이 허술한 부분이 있어서 아쉽긴 하나 수긍이 가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볼만한 것은 주인공이 위기를 벗어날때마다 자신을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번뇌속에서 현실직시를 빨리하고, 자신의 지위를 철저히 고수하고 활용하며, 수를 놓는 강도가 점점 쎄진다는 거다. 한번 한 실수는 두번 하지 않는다는 캐릭터.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면서 드라마 [추적자]나 [펀치]의 작가 박경수 풍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다 문득 검색했는데 진짜 극본이 박경수 작가다. 

사람을 믿는다는 게 참 어렵다. 내가 믿었는데 남이 성처를 주기도 하고, 남이 날 믿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가 아픔을 주기도 한다. 이 드라마도 믿음에 대한 배신에서 시작된다. 일부러 그랬다면 사기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전개된다면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인생을 살면서 종종 겪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인간들도 더러 있다. 서글프지만 현실이다. 그래서 믿음은 말보다 행동이다. 행동 속에서 느껴지고 그 행동의 지속성이 믿음에 확신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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